지난주 콜린 목사님의 설교로 교회 분위기는 평소와는 사뭇 달랐다. 콜린 목사님과 같이 오신 중보자 세 분, 그리고 교회 가족들이 데려온 외국인 친구들로 북적거렸다. 예배 이후에 자연스럽게 기도를 드려서 식사 후에 원띵은 따로 안 하고, 교회 자매 몇 명과 짧게 교제를 나눴다. 한국에서 매번 예배가 끝나고 따로 교제를 했던 터라, 주일에 그냥 집에 가는 게 매번 아쉬웠는데 요새는 짧은 교제라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생겨서 너무 감사하다. 나 혼자 교회를 다니는 게 처음이라 쉽지는 않았는데, 역시 하나님께서는 모든 걸 준비해놓으셨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 삶에서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선택하지 않았다. 태어나기로 선택한 사람은 단 하나도 없다.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나를 낳아줬기에 태어난 것이다. 아주 오래전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셨기에 지음을 받았고, 믿음 또한 하나님이 믿게 해주셨기 때문에 믿은 것이다. 나는 모태신앙이라 믿음을 선택했다는 생각을 한 적은 없지만, 어린 시절 혹은 성인이 되어서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은 본인이 예수님을 믿기로 ‘선택’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하나님이 그들을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들 또한 예수님을 믿을 수 있었던 거다.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가 있지 않고서는 우리는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다. 내 이성과 의지에 근거한 선택으로 살아가고 있는 듯하지만 정작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다. 하지만 매번 잊는다. 생각으로, 입술로 하나님께서 내 삶 주인이시라고 고백하지만 정작 삶은 그렇지 않다. 내 삶은 내 것이라며 처절하게 소유권을 외치지 않더라도, 삶이 모든 걸 보여준다. 내 삶이 하나님의 은혜로 생겨난 것임을 알지만, 영의 소리가 아닌 혼과 육의 소리를 듣는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는 교회에서 친하게 지낼, 사랑으로 감싸줄 형제자매를 내가 선택하고 싶다. 저 사람은 조금 버거운데, 저 사람은 도저히 사랑스러운 구석이 손톱만큼도 없어서 도저히 사랑하지 못하겠다 생각한다. 교회뿐 아니라 가장 가까운 가족에게도 그렇다.
설교를 마치고, 서로 두 사람씩 손을 잡고 ‘I belong to you, you belong to me’라고 고백하는 시간이 있었다. 내 속에는 내 힘으로 만들어 낼 사랑이 없지만 입술로 이야기하는 순간 사랑이 생겨나는 듯했다. 우리가 선택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으니 교회라는 한 몸으로 이루어진 우리는 가족이다. 서로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건만, 여전히 사랑이 부족한 우리.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해 사는 것이라.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고 또 주의 손에 나의 손을 포개어 나 주와 함께 죽고 또 주와 함께 살리라, 영원토록 주 위해 살리라.
이 찬양은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지 않으면 함부로 불러서는 안되겠다. 하나님께서는 내 모든 걸 아시는데, 마음에도 없으면서 입술로 고백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아직까지는 자신이 없다. 주와 함께 죽고 주와 함께 살리라. 하지만 그래도 힘이 되는 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보다 더 내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사실이다.
이번 주는 수요일에도 교회에 갔다. 화요일에 영어 과외를 받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시간이 전혀 겹치지 않아서 예전부터 하고 싶었던 성경 공부를 시작할 수 있었다. 여유로움 속에 바쁜 시간이 생겼고, 또 그 여유로움의 일부를 주님을 생각하는 시간으로 채울 수 있어서 너무도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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