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신앙생활은 꽤 오랜 시간 동안 노란색이었다. 토양은 건강하지만 여러 외적인 이유로 메말라있었다. 풀이 마르면 노랗게 변하듯이, 푸르고 건강한 초록빛으로 태어난 나의 믿음은 시간이 흐르면서 많이 메말라있었다. 다시 일으키려면 뿌리부터 바뀌어야만 했다. 조금씩 건강한 뿌리로 자라나면서 마르고 오래된 이파리가 떨어져 나가고, 점점 푸르게 변하고 있다. 의문을 가져서는 안 되는 줄만 알았고, 그래서 속으로만 품고 있던 생각들이 오히려 정죄감으로 묶여져 나를 힘들게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이미 구원받은 자인데 왜 정죄 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걸까. 그저 자유 하면 된다. 모든 죄를 대속하신 예수님께서 계신데, 사람이 겁나고 나 스스로가 겁나서 꽁꽁 숨겨왔던 생각들이 많았다. 그런 생각들이 조금씩 풀어져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그저 상투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그다지 감동적이지도 않았다. 어떤 사람은 저 말을 듣고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하던데, 나는 어떠한 감동도 느낄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이 나를 대체 왜 사랑하는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람이라는 존재를 사랑하셔서 본인의 아들을 육신으로 보내시고 희생하셨지만, 그렇게까지 나를 왜 사랑하실까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왜 교회에서는 매번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유를 우리 본인에게서 찾으면 답을 내릴 수 없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시는 시선으로 우리를 보아야 한다. 인간적인 관점으로 스스로를 바라보면, 사랑할 거리가 그다지 없다. 분명 육적으로도 하나님께서 지으신 인간은 너무도 세밀하고 아름답다. 하지만 놀라운 것과 사랑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부모가 되어본 적은 없지만, 부모 또한 자식이 사랑받을 만한 행동을 해야 사랑이 우러러 나올 테다. 부모 또한 인간이기에, 무조건적인 사랑은 인간의 힘으로는 나올 수 없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영광을 돌리기 위해 지음 받은 존재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이야기에 전혀 감동을 받지 못 했던 나는, ‘하나님은 우리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창조하셨다’는 말에 너무도 감동을 받았다. 하나님께서 처음 우주를 창조하시고, 모든 게 준비된 그 이후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곳에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를 동시에 두셨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어서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유혹 가운데 흔들릴지라도 하나님을 찾길 원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고 하나님을 거역할 위험을 감수하시면서까지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사모하실 원하셨다. 하나님과의 관계, 친밀함의 중요성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를 너무 사랑하시고, 인간을 지으신 뒤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흐뭇하고 기뻐하신 이유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은 정말 놀랍다. 하나님의 은혜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좋은 차와 좋은 집이 생기고 편안하고 건강하게 살고 있어서 놀라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시고 심히 기뻐하셨고,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걸작품으로 창조하셨다는 하나님의 그 마음. 이루 헤아릴 수 없지만 그저 놀랍고 또 놀랍다. 하나님과 친밀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래야만 하나님께서 내가 갈 길을 알려주시기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지음 받은 목적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친밀하고 관계가 온전한 게 우선순위 중에 우선순위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