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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의 유산

영국에 와서 낯선 것 중 하나가 영어 발음이다. 꼬마 아이의 발음을 들으면서도 내가 한국에서 배웠던 발음과는 다르게 발음하는 것에 새삼 놀란다. 촌스럽게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눈이 동그래졌다, 물론 안 그런 척 보이려 애썼지만 부정할 수 없었다. 낯설고 새롭고 놀라웠다. 그중 하나가 'hair'였는데, r 발음이 빠지니 성의 없게 들렸다. 그러고 나서 성경을 읽다가 상속자라는 단어인 'heir'를 보고 'air'의 발음과 똑같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어 우리 죄를 구속하시고, 이미 모든 권세를 누릴 수 있도록 우리를 상속자로 삼아 주셨다. 하지만 지금 내가 이 땅에서 상속자처럼 살고 있는지 생각해보면, 그저 현재 눈에 보이는 빈손만 바라보고 전전긍긍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가가 전부는 아니다. 비록 내가 지금 상속자처럼 내 인생을 살고 있다 하더라도, 내 다음 세대에 그 복음과 진리가 전해지지 않거나 올바르게 전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상속자처럼 살다가 물려줄 유산이 단 하나도 없는, 혹은 물려준 유산이 알고 보니 엉터리인 삶을 살고 싶지는 않다. 어릴 때 그런 생각을 했었다. 내가 커서 집사님이 되면 어른들처럼 말씀도 많이 알고 기도도 막힘없이 할 수 있을까? 하고.

어른이 되면 나도 눈에 보이는 저런 것들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을 해본 적이 있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아직 집사님은 아니지만 어른이다. 내가 어렸을 때 상상한 어른은 결코 아니다. 말씀을 많이 알지도 않고, 기도를 막힘없이 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어릴 때 짐작할 수 없었던 것들을 배워나가고 있고, 또 훈련받고 있다. 

영국에 와서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내가 부모가 되어 자식의 믿음을 바로 세우는 것, 부모의 역할이 얼마나 큰지 새삼 실감했다. 나는 과연 내 자식에게 올바른 믿음을 물려줄 수 있을까? 겁도 났다. 내가 아는 게 없고, 내 믿음이 굳건하게 서 있다는 자신이 없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영국에서, 삶 속에서 그리고 교회 생활 속에서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게 되면서 믿음의 유산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다. 그만큼 나와 하나님 관계에 집중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지난주에는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런던 순복음 교회 (레인즈 파크 위치)에서 홍성건 목사님과 김미진 간사님의 재정 집회가 있었다. 토요일 마지막 날 만 참석해서 아쉬웠는데 주일에도 홍성건 목사님과 김미진 간사님이 말씀을 전해주셔서 너무도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이었다. 찬양은 내 기분, 감정,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찬양은 사실을 말하는 것이라는 홍성건 목사님의 말씀이 강하게 와 닿았다. 내 감정에 휩쓸려서, 분위기에 취해서 찬양을 부르는 건 일반 가요랑 다를 바 없다. 찬양이 가요와 다른 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높여 드리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기뻐하는 행위라는 사실이다. 찬양의 가사는 사실을 말한다. 같은 맥락으로 이전에 여주봉 목사님이 '우리 자신'에게 집중된 찬양 가사를 지양해야 한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그때 말씀이 떠오르면서 더욱 선명하게 말씀이 이해됐다. 우리가 찬양을 하는 이유는 우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을 높여드리기로 '선택'함으로써 그분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다.

졸려서, 피곤해서, 바빠서, 몸이 무거워서, 머리가 아파서... 갖은 핑계로 간신히 교회에 기어 나와서 찬양을 부를 때도 멀뚱멀뚱 앉아 있거나 찬양이 다 끝나고 예배당에 들어가곤 했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반성이 많이 됐다. 찬양은 내 상태에 따라 부르고말고를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사도행전 16:23-26

바울과 실라는 옥에서도 주님을 찬양했다. 내 몸이 편안하고 보이는 상황에 만족스러워서 부르는 찬양이 아니었다. 내 환경이 완벽해서, 모든 일이 만사 형통해서 부르는 찬양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보이는 상황이 우울할 때, 그때가 오히려 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때라는 말씀을 듣고 삶에 적용해야겠다는 강한 도전을 받았다. 이어서 김미진 간사님도 말씀하셨다. 홍성건 목사님의 이 말씀을 인생에 적용했고, 찬양의 놀라운 능력을 경험하셨다고 했다. 말씀이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닌 삶이 될 때 갖는 그 힘을 더욱 기대하고 사모하게 됐다.

매주 말씀을 듣고, 말씀으로 끝내지 않고 내 인생에 적용하고, 살아내고, 오로지 하나님께 의지하는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하루가 다음 세대에게 전해줄 믿음의 유산의 밑거름이다. 하지만 또 언제 거짓말처럼 사라져버릴지 모른다. 김미진 간사님이 말씀하셨듯이, 매일 타락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향한 이 시선을 오늘 하루 뺏기지 않게 해달라는 기도를 매일 잊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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