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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관웅 목사님 찬양집회

한국의 유명한 찬양 사역자이자, CCM가수, 예배인도자이시며 2008년에는 뉴사운드교회를 개척하시고 목회까지 시작하신 천관웅 목사님의 찬양학교와 킹덤드림집회를 다녀왔다.  신앙생활이 3년도 채 되지 않은 나는 천관웅 목사님에 대해서 사실 잘 알지 못한다. 목사님의 얼굴도 최근에 기사를 통해 처음으로 접했다. 그나마 위안이 되었던 건 어린 시절 교회를 왔다갔다(?) 하면서 들었던 노래들 중 천관웅 목사님의 곡들이 내 기억 속에 꽤 잘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그 찬양들이 천 목사님의 곡들인 것도 최근에서야 알게된 사실이다^^)

내 하나님이 찾으시는 예배자는 오직 한 분 하나님만 찾는 예배자 내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자는 상한 영혼 깨어져 주 만 찾는 예배자”

첫째, Worship으로서의 예배   언젠가부터 나는 어딘가 여행을 가거나 평소에 다니지 않는 곳을 방문할 기회가 생기면 주님의 특별한 음성을 기대하는 버릇이 생겼다. “주님 이 곳에서 주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기 원합니다. 이 곳에서의 시간을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메시지를 기대합니다.” 지난 7월 Lake District라는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왔다. 그때도 나는 하나님께 “주님, 이 시간을 통해서 주실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 기대됩니다.” 라고 기도했다. 그 시간들을 통해서 주님께서 주신 말씀은 바로 “A humble worshipper” “ 한 명의 겸손한 예배자”   시간과 장소, 어떤 위치나 직책에 상관없이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예배자가 되어야한다.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시선과 생각들, 그리고 우리의 들을 귀를 주변 환경과 비 본질적인 것들에 빼앗길 때가 많다. 우리의 본분이며 존재의 목적인 예배자의 정체성을 잊어버린 채 말이다.     세상이 말하는 겸손이란 ‘스스로 낮아지는 것’ 정도로 이해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믿고 예배하는 우리에게 겸손이란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완전/무결/완벽하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우리의 의가 아닌 오로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고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한다. 그러나 우리는 때로 세상과 별반 다를바 없이 이 겸손이라는 단어를 이해하고 적용하여 우리 스스로를 제한한 나머지 우리 안에 살아서 역사하시는 예수그리스도의 완전 무결하신 능력을 제한하는 경우나 너무나 많다. 겸손이란 주님께 의지하고 그분의 능력을 믿으로 취하는 것이다.      우리의 예배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하심, 임재가 없는 이유는 우리 예배 안에 하나님을 갈망하는 예배자의 목마름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는 얼마나 목마른가? 우리의 예배자로서의 하나님을 향한 목마름의 깊이가 하나님을 역사하시게한다. 하나님을 가만히 계시지 못하게 하는 정말 갈급한 예배자의 heart, 그 갈급함이 있어야한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찾지 않고 갈급해하지 않고 형식적인 말로 하는 갈급함에 머무는 것이 우리 예배의 모습이 아닌가 싶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아버지에 목마르고 갈급해하는 “겸손한 예배자”의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갈 때 주님께서 우리를 배부르게 하실 것이고, 겸손히 주님의 얼굴을 찾을 때 주님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우리를 고치실 것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배부를 것임이요 (마 5:6)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겸비하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 죄를 사하고 그 땅을 고칠찌라. (역하 7:14)

  Worship으로서의 예배란 우리의 최고의 가치를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을 향한 갈급함이 아닌, 나의 인생을 위해, 혹은 세상의 가치 기준과 요구를 위해 우리의 인생을 끌고 갈때가 많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한 봉사와 헌신의 자리가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얼마나 큰 영광의 자리인지도 모른채 벗어나려고 발버둥친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을 예배하기에 아직 충분히 준비되어 있지 않고 깨끗치 않다고 느끼기까지 한다.

우리가 깨끗하기에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깨끗게 씻어 주시는 우리를 위한 욕조가 되어 주시기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깨끗해질 수 있고 주님을 예배할 수 있다.

  우리는 절대로 우리 스스로 깨끗해지고 충분히 준비될 수 없는 존재이다. 이것을 인정하는 겸손함을 가지고 삶 속에서 씨름하는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예배하는 것이 중요한다.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 하는 열심이 우리를 깨끗게 하는 것이 아니라 문 밖에 세워둔 주님을 맞이하는 지혜 (예배)가 우리를 깨끗하게 할 것이다.


2. Service로서의 예배   Worship으로서의 예배가 우리 신앙의 본질적 측면으로 하나님과의 수직적 예배라고 한다면, Service로서의 예배는 개개인의 교회들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된 교회로서 관계적 측면의 수평적 예배라고 할 수 있다.     얼마 전 우리교회는 수련회를 통해서 이길수 목사님의 내적치유 집회를 가졌다. Worship적 측면의 예배가 “A humble worshipper”라는 주님의 음성을 다시 기억나게 만들었다면 Service로서의 예배는 지난 내적치유집회를 떠올리도록 만들었다. 우리 교회는 내적치유집회를 통해서 많은 형제 자매들이 마음 속 깊은 부분들을 나누고 서로 품어주며 좀 더 ‘관계’하는 교회로 성장했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Service로서의 예배는 ‘교회’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Worship으로서 예배와 humble worshipper, Service로서 예배와 Relationship

  교회는 불신자, 환자, 버림 받고 상처 받은 사람들이 환영 받는 곳이어야 하며, 세상으로 다가가는 곳/공동체여야한다. 세상 어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교회, 즉 세상 속에서 세상과 섞이지 않고 구별되지만 세상과 단절 되지 않고 오픈 되어 세상과 관계하는 열린 교회를 지향해야한다. 사람들의 마음 밭을 막고 있는 돌들을 정리하여 옥토밭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노력을 하는 것이 교회이다.. Service적 예배가 바로 이러한 교회의 모습이다. 세상을 복음을 들을 수 있는 자리로 이끌어 오고 그들의 코드/기호에 맞는 예배를 통한 복음 들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우리 교회가 해야하는 몫이며,  선교적인 예배라고 할 수 있다.     마음 밭에 돌들이 치워져야 씨앗이 심기고 열매를 맺는다. 그 돌을 치워주는 것이 교회의 역할, Service적 예배의 역할이다. 세상과 교류하고 관계하는 교회, 세상을 품어줄 수 있는 교회가 되어야한다. 교회의 지체들이 진심으로 서로의 깊은 마음을 나누고 관계를 만들어갈 때 건강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되듯이, 세상에 다가가는 예배를 통해 교회의 몸의 일부가 되었을 때 하나님 한 분만을 위한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하는 모든 예배의 근본 목적과 방향은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을 향하게하기 위함이다.

우리 삶의 변화는 우리가 무엇을 가졌는가가 아니라 무엇에 사로잡혔는가에 달려 있다. 예수님 한가지에 사로 잡히는 삶을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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